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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근대화는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첼린저스 2021. 5. 20. 01:28


서문


식근론에 대한 


나는 "한민족이 못나서 근대화를 할수 없었다" 라는 역갤식 식근론에는 회의적이지만, 조선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고 본다. 서구의 근대화는 단순히 기술문명의 승리라고 보긴 어려우며, 그 기술의 발전을 지탱할 문명과 정부체제 그리고 법률이 지탱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서학이나 서구 문물에 관심을 가진 정조 또는 인조의 아들인 소현세자가 개방을 미리 했다면 우리나라는 근대화할수 있었다고 이야기하지만, 본인은 이 부분에는 완전 회의적인게, 기술의 발전이 체제에게 도움을 주려면 그만한 정치체제의 발전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양무운동은 정치체제의 발전 없는 기술의 발전이 근대화의 성공을 가져다주는가라는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한 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조가 서구문물을 받아들였다 한들 그 문물이 부추키는 체제변혁을 받아들였을까? 그리고 그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입하고 들어오는 집단이 조선의 전제왕정과 싸울 수 있었겠는가? 


정리하자면 조선의 미래는 암울했다


정치적 혁명의 씨앗이 존재하지 않았음, 서구문물을 받아들인다 해도 실패했을 가능성이 높음 ==> 식민지행

개항하면, 제국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시장을 장악당하거나 식민지 테크

개항하지 않았다면, 강제적으로 문을 열게되고 결국 식민지행


일본과 프랑스의 근대화의 결정적 차이: 민주주의가 심어질 수 있는 "사상 기반"

조선에게는 정치적 변혁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이 존재하였는가?  


우리는 교과서에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고 배웠다.

그럼 프랑스와 다른 유럽국가들은 왜 영국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는가?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프랑스와 일본/프랑스의 근대화 과정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고 본다. 


프랑스 역시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사회적 발전(철학적 기반)이 존재하였다. 당장 17세기 영국의 민주주의, 미국의 민주주의가 프랑스 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프랑스는 상공업이 발달해 있었고, 국왕 중심의 강력한 정부와 민족 국가 역시 존재하였다, 프랑스는 사회적, 기술적 발전의 맞는 정치체제의 수립을 위해 프랑스 혁명이라는 엄청난 피를 흘려야만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프랑스의 근대화는 성공적이었다. 프랑스는 19세기에 괄목한 성장을 이루었으며, 법률적 성숙함을 이루었고, 특히 정치체제의 입장에서는 프랑스는 영미권과 민주주의 사상에서도 꿇리지 않는, 영미권의 입김을 많이 받지 않는 독특한 민주주의를 만들어 내었다. 당장 프랑스의 정치체제는 미국과 영국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가? 




일본 역시 정치체제의 변혁을 통해 근대화를 시도했으나, 일본의 근대화는 어떠하였는가? 일본은 근대화를 위한 사회적,사상적 기반이 전무했으므로 프로이센같이 절충식의, 절반의 근대화, 수동적인 근대화만 이루어졌다. 이는 러시아도 일부분 마찬가지였다고 본다. 이들의 특징은 전제적 정부가 일부분의 민주적 제제와 함께 혁명적 변화를 추구했다는 점이다. (계몽전제군주) 일본과 러시아, 프로이센같은 경우에는, 비록 사상적 기반과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적 기반이 존재하지 않은 근대화였으나, 정치적 변혁이 존재하였고, 신정부가 민족국가, 근대적 시스템과 사상을 자신의 정치체제에 빠른 속도로 도입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오스만과 중국의 경우에는 사회적 발전조차도 정부가 이끌지 않았으니 실패한 근대화가 맞다고 본다. 



조선은 당시 국가치고 중국보다 더한 중앙집권국가였으며, 작은 영토와 많은 인구밀도로 인하여 행정과 군사가 꽤나 고도화된 국가였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많고 자원이 작을수록 집요한 정치체제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중앙정부가 수립될 수 있었다고 본다. 거대한 생산력을 갗춘 중국과 가까운 덕분에 무역을 공격적으로 할 이유도 없었다. 농업 중심이었고, 수공업 중심, 공무역 중심이었던 조선은 일본과는 완전 정반대 상황이었으며, 배경상으로도 근대화 하기에는 좋지 않은 환경들이 산재하여 있었다. 즉 왕정이 쓸데없이 강력한 국가였다는 것. 심지어 정조 이후로 왕권이 더욱 강력해지며, 조선 정부는 향촌의 여론도 주도하게 된다. 


이 글에서, 나는 조선이 근대화를 스스로 할 수 없었다라고 주장한다기 보다는 조선이 눈을 떴을때는 무엇을 한들 이미 늦었었다는 입장이다. 조선에게 있어서 영국과 프랑스같은 완전한 근대화는 환상에 가까웠고, 기껏해야 청나라,일본같은 절충식의 근대화가 최고일텐데, 조선은 일본과 다르게 시기적으로 부족하였고, 정치변혁의 씨앗조차도 존재하지 아니하였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기존의 막부체제가 타도되었고, 청나라는 중화민국이 수립되어서야 어느정도 근대적인 정부를 수립하였지만, 조선은 정치적인 변혁을 꾀할 집단이 없었다. 



일제는 단순히 우리 민족이 탄압당하기만 한 시대인가?


이 생각을 더 연장하여, 일제를 단순히 "우리 민족이 탄압당한 시기" 라고 매도하는 것은 편향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일제의 이점은 분명히 있었다. 우리가 쓰는 서구에서 기원한 개념(연애,사회,정치,공화,민족.. 등등) 들이 한자어로 번역되어 자연스럽게 사회에 녹아들었으며, 한민족이 근대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게 된 시기라고 생각한다. 즉 정치적으로는 암울한 시대였지만, 오히려 사회적으로는 "근대"라는 개념이 안정적이고 강압적인 정치기반 아래에서 사회적으로 정착되고 성숙해지는 시대였다는 것이다. 


다만 "일제가 강제로 한국을 근대화했다" 라고 보기는 어렵다. 단순히 우리민족이 사회적, 정신적 준비를 닦았을 뿐이다. 나는 한국인에게 있어서 일제 시대란 프랑스 전제왕정 시기의 부르주아지 계급처럼, 시민 계급처럼, 근대라는 개념과 봉건적 질서가 공존했던 시기라고 보는 편이다. 사실 더 따지고 들어가보면 그것보다도 더욱 강압적이었고 민족의 경제기반의 구축마저도 제한당했다는 점에서, 근대화의 준비치고는 일제시대는 17세기 앙시엥 레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근대화는 잿더미부터 이루어진 것이 맞다. 일제를 통해서 받아들인 근대라는 개념을 기반으로, 결과적으로 친일파를 용서하고 재기용하여 반공체제에 편입시킴으로서 일제시대때 받아들인 것이 그대로 대한민국에게도 계승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라 볼 수 있다. 즉 이 시점에서 역갤 식근론은 격파이며, 일본의 지배를 받지 않고 조선 스스로의 근대화는 가능했는가가 떡밥이 된다. 



사실 이런점에서 대한민국의 근대화는 프로이센식과 프랑스식 근대화의 절충형으로, 일제가 우리나라의 봉건체제를 무너트리고 강제로 주입시킨 근대를 기반으로 하여, 억압적 정치체제 아래에서 이루어진 경제적 발전과 기술적 발전에 부스터를 받아 새로운 정치체제(87년체제)를 수립시켰다는 점에서 절충형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의 근대화는 암울했으나, 대한민국의 근대화는 상당히 시대를 타고난 기적이었다. 


조선은 정상적인 근대화가 가능했을까?


만약 우리나라가 자주국가였다면, 일본이 했던 것처럼, 서양 서적의 번역과 개념들을 우리가 직접 번역해야 했을 것이고, 그마저도 왕정에 의해 방해받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김옥균과 개화파들이 조선왕정에게 어떠한 취급을 받았는가? 독립협회는 어떠했는가. 


일본은 막부가 약한 이유로 각 번들이 상당히 자유로웠고, 자유로운 토론장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메이지 유신부터 유명한 사상가들이 하나도 나오지 않은 이유는 조선같은 중앙정부를 그제서야 확립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사상통제와 정부중심의 근대화가 이루어졌다는 소리다. 


그러나 조선은 이미 13세기부터 지방 향촌세력을 모두 깨부시고 막강한 중앙정부와 산간오지까지 정부가 행정력을 자랑하는 국가였다. 이는 임진왜란때 일본을 상대로 향촌을 컨트롤하여 대규모 의병을 부채질한것과 더불어 영정조시대 전제왕정이 향촌을 좌지우지 한것으로 충분히 증명된다. 


일본의 근대화는 사스마번과 죠슈번이 중앙정부를 무시하고 토론과 경쟁을 벌이면서 중앙정부를 약화시킨 역사이고, 대부분 이 시기에 일본의 유명한 계몽사상가들이 나왔다. 그러나 조선의 중인층과 양반층이 사스마번과 조슈번과 같은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과연 조선 정부를 무시할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 군사적 힘이 있었을까? 농업을 중시한 조선이 상공업적 발전을 이룩했던 에도막부와 동치될 수 있을까? 


일본의 근대화는 확실히 운이 좋았다. 상공업적 발전을 공식적으로는 멸시했어도, 막부를 중심으로 중앙정부도, 봉건체제도 아닌 느슨한 체제를 유지하며 상공업적 발전을 이룩하였고, 지방의 번들은 서구와 무역적으로 접촉하면서 부를 쌓아 18세기에는 막부의 영향을 받지 않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체제변혁을 위해 서구를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근대화가 추진되었고, 쿠로후네 사건 이후에 강력한 근대화를 전국적으로 추진할 정부를 필요로 하면서 메이지 유신이라는 대변혁을 낳기에 이르렀다. 


근대화를 거부했던 조선을 탓할 이유도 없다, 일제를 재평가할 필요도 없다.


일제를 재평가할 필요는 없다. 위에도 썼지만, 앙시엥 레짐보다 더 나쁜 상황이었고, 나중에는 발악하다 못해 전쟁범죄까지 저지른 국가를 왜 옹호하겠는가? 다만 학문의 입장에서 단순히 분노를 가지고 일제강점기를 대하는건 그리 좋은 자세가 아니다. 교과서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독립운동가의 서사시 중심으로 역사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일제시대의 우리 민족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어떠한 생활을 하였는가를 중심으로 다루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6.25에도 분명 좋은점이 존재한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판에 일제시대가 불러온 장점은 왜 없겠는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조선이 못나서 근대화를 못했다기보단, 일본처럼 근대화의 씨앗이 자랄만한 환경이 없었다는 것에 가깝다. 즉 비유하자면, 화성이 지구보다 못나서 생물이 못사는게 아니고, 화성이 생물체가 살만한 환경이 못되기 때문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