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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크리스천 운동] 성경에 과학적인 부분은 없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12. 10. 17:28

이전에 가까운 창조설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언급했지만, 창조설자들의 주장인,

 

'성경에는 과학적인 부분이 있다.'

 

라는 주장은 과학에 대한 공격임과 동시에 성경에 대한 모독일 수 있다. 과학이란 것은 언제나 잠정적인 것을 원칙으로 하며, 과학의 기본은 "모른다"이며,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바뀌고 업데이트가 되어야 한다. 만약에 성경에 과학적인 부분이 있다고 가정하자. 예를 들어 마태복음이 "과학적"이라면, 마태복음이 다른 부분과 충돌하는 점들에 맞춰 성경 업데이트마다 수정되어서 나와야 한다. 단지 번역만 바뀌는게 아니라 아예 내용을 빼버리거나, 수정해버려야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2014는 마태복음 2013에서 이런부분을 고쳤습니다. 그 뿐 아니다. 새로운 가설들과 테스트들이 이루어야 하므로, 새로운 챕터들이 생겨나고, 이전 챕터들이 폐지되어야 한다. 자 이번에는 휴고씨의 가설을 담은 휴고복음을 성경에 새로 추가합니다... 지금 성경에 이런 짓 했다가는 이단소리를 제대로 듣고 말 것이다. 

 

성경은 전혀 과학적이지도 않고 과학적인 부분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성경의 내용이 변하지 않고, 그 자체가 경전으로서의 큰 의미를 갖기 때문에, 잠정적이어야 한 과학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왜 일부인들은 성경에 과학적인 부분이 있다고 주장할까?

 

일부 창조설자들이 예를 들때, 가죽부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막 2:21-22)

 

 

자 이게 과학적일까? 만약에 이것이 과학적인 부분이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이렇게 업데이트가 되어야 할것이다.

 

생베 조각을 10년 이상된 낡은 베로 만들어진 옷에 수제 바느질을 사용하여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베가 장력에 의해 낡은 베옷의 일부분을 당기어 근처부분 반경 10cm에 한정해서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다만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테르는 상관없다. 또한 기계를 사용할 경우 이런 부분을 피할 수 있다. 새롭게 재배된 붉은 포도주를 10년동안 여러 포도주를 담아서 산성화된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붉은 포도주는 새로 만들어진 가죽 부대 혹은 낡은 것을 쓰려면 플라스틱통이나 유리병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물론 숫자는 내가 임의로 만들어낸 것이지만, 과학책이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형태의 수정이 이루어지게 되어야 한다. 자 이렇게 되면 원래의 의미가 퇴색하거나 없어져 버린다. 원래의 새로운 마음가짐에 대한 의미는 날아가버리고,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테르, 플라스틱이나 유리병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가 되어버린 것이다. 과학이라는 것이 세계관을 담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안에서 발견하는 의미보다는 과학적 증거들에 집중하는 것이 원칙이다. 성경을 과학적으로 봐서는 안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 있다. 성경에서는 심지어는 고래를 어류라고 한다거나, 곤충의 다리 갯수등의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만약 성경이 과학적이라면, 이런 부분도 계속 수정해줘야 할 것이다.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사람들이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해한다. 크리스천에게 성경의 삶의 지침서이며, 모든 것보다 높은 "말씀"이 기록되어있는 책이다. 그렇기에, 성경에는 온갖 좋은 것을 다 갖다붙이고 싶어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현대의 과학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며, 내가 타입을 치고 있는 컴퓨터를 포함해 수많은 문명의 이기를 만들어 냈으며, 과학은 현대인들에게 가장 신뢰받는 지식중 하나이다. 즉, 창조설자들이 성경에 과학적이라는 말을 붙임으로서, 그들은 과학이 가진 가장 큰 권위인 신뢰성을 얻고자 하며,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추겠다고 주장하는데, 결론적으로 자기 무덤을 파고 있는 것밖에 안되는 것이다. 그들은 과학의 권위만을 얻으려하다보니, 과학의 본질인 잠정성에 대해서는 완전히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과거 우상숭배의 시작과 다를 바 없다. 아론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면서 그당시 가장 귀하다는 금 가락지를 취해서 송아지 형태로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창조설자들도 "하나님의 창조"라면서 지금 가장 잘나간다는 과학의 이름만 취해서 창조과학을 만든 것과 판박이니까.

 

성경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 

 

단 하나의 구절도 과학적이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의미가 있다. 유학자들이 공자나 노자를 읽을때, 그것들이 과학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데, 그렇다고 그게 의미 없는 책이 아닌 것 처럼. 셰익스피어의 소설이 과학적이라고 말하지 않지만, 셰익스피어의 소설은 세계적으로 널리 읽혀지고 의미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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