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담론/민족주의 (Nationalism)

다문화 정책을 그만두어선 안 되는 이유.

첼린저스 2016. 7. 13. 18:40

최근 유럽과 미국에서는 다문화 정책에 대한 실패를 선언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197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2차대전의 민족주의와 전체주의의 광기에 반하여 시행된 다문화 정책은 1990년대 들어 철퇴를 맞고, 2000년대 들어, 메르켈 총리의; "다문화 주의 실패 선언"과 사르코지의 다문화주의 실패 언급으로 확인사살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의 정책을 "return to assimilation" (동화주의로 돌아가자) 시대라고 하는데, 이 구호 아래에서, 국가들은 강한 시민통합정책과 시민권 시험문제, 영주권 시험의 난이도를 상승시키고, 문화를 존중하는 정책을 버리고, 이민자들의 커뮤니티를 해체하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발도 적지않게 일어났고, 다문화주의는 제 3의 길을 걷게 되었다. 즉 시민통합과 동화주의, 그리고 다문화주의를 적절하게 섞는 방식으로 확대되었다. (마지막 단락에서 서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문화정책의 지속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한국에서는 아직도 수없이 많다. 즉 이 글에서는 우리 나라가 왜 다문화정책의 문제와 시련에도 불구하고 계속되어야 하는지 간단히 소개한다.


다문화 정책은 "경제" 문제가 아닌 "사회" 또는 "시민권리" 문제이다


다문화 정책을 반대하는 가장 주된 논리는, 다문화정책과 이민정책의 확대가 본국인들의 실업을 부추킨다는 것이며, 진보진영에서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신장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논지가 많다. 한마디로 인구의 감소는 산업구조를 개편하여 기존의 임금 및 처우를 개선할 기회이기에, 일부 경쟁력이 떨어지고 해외진출도 어려운 영세기업들이 의도적으로 외국인 유입을 통해서 사회 전반적인 임금 및 처우의 하향평준화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여 공장을 돌리려는 처사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이는 양측 진영다, 다문화정책을 경제적 논리로 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다문화정책의 동기는 저출산과 노동력 부족일지라도, 그 정책의 전신은 사회와 시민권리에 속한다. 다문화정책이란, 그만큼 사회가 더 많은 물질적인 비용과 댓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시행해야 하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양성 평등 정책, 성 소수자 차별 금지같은 정책들이 사회에 더욱더 많은 사회적 비용과 물질적 댓가를 요구하지만, 그렇다 해서 이 정책을 폐기하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다문화 정책을 경제적 논리로 보고 있음은, 19대 국회의 국회의원을 지냈던 이자스민 의원에 대한 혐오에서도 볼 수 있다. "왜 내 세금을 우리 실업자 만드는데 쓰나" 식의 비난이다.


그러나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출산율과 노동문제, 세대교체. 그리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에 대한 연습등의 이유로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껴서 시행하는 정책이며, 이들에 대한 다문화정책과, 그에 따른 복지와 특혜는 단순히 이민자들을 난민이나 식객으로 보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가 이들을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편의와 지원을 제공하고 그 비용을 지출하는 것에 불과하다. 즉 시민의 권리를 확대하고,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한다는 명목아래 시행되는 정책인 것이다, 이는 다문화 정책의 탄생이, 1955년과 1965년 사이, 서구 사회에서는 양성 평등, 여성 투표권 운동(suffage)과, 인종차별 및 인종분리 철페 운동등과 같이 탄생한 점에서 엿볼수 있는 사실이다  


(이분이 까이는 이유랑 일맥상통하다고 생각)


다문화 정책과 통일과의 연관성


죽의 장막이 풀리기 이전, 그러니까 중국이 개방되기 이전에는, 조선족에 대한 환상이 강했다. 중국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을 받아들이고, 민족국가를 이룩하겠다는 막연한 환상이 있었으며, 이는 조선족 이민자들에게 국적 취득시 이익을 주는 정책으로 귀결되었다. 그 결과 2000년대에는 조선족이 한국에 정착하는데 성공하였고, 그 결과는 보이스 피싱, 살인및 절도 범죄등의 행각이 부각되면서, 조선족 혐오 정서들이 늘어나는 형편이다. 


북한이탈주민(이하 탈북자) 의 경우는 어떨까, 지금은 대한민국이 민족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탈북자들을 따뜻하게(?) 맞아주고 있고, 이들에 대한 특혜를 베풀고있다, 또한 현재까지는 사회적으로도 탈북자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경우를 많이 볼수 있지만, 탈북자가 2만명 시대에 도입하는 지금마저도 탈북자들은 남한 사회에서 차별과 상처를 받고 제 3국으로 떠나버린다. 그 정도의 탈북자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라가 우리 나라다. 우리나라에 가장 쉽게 동화할 수 있는, 언어와 문화가 비슷한, 동질성이 강한 집단마저도 따돌리는 것이 현재의 현실이다.


만약 통일이 되면, 우리 사회가 조선족을 최근들어 싫어하게 되는 것처럼 북한계 한국인들을 은연중에 차별할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적어도 동독과 서독은 서로 수많은 교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독사람들은 동독 사람을 깔보았고, 동독 사람들은 정치적 반항과 이주로 응답하는 비극적인 역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즉 대한민국은 통일을 위해서라도 "다른 집단과 한 나라에서 사는 경험" 에 대한 선행교육과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보겠다. 앞으로 50년간은 "한민족" 이 아닌 "한국인"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북한계 원주민, 남한계 원주민, 필리핀계 한국인, 베트남계 한국인, 중국계 한국인 식으로 말이다. 이들이 모여서 동질성으로 뭉쳐진 집단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이는 18세기 서구에서 유입된 개념인 "민족주의"가 일제 시기를 거치며 변형된 혈통주의적 개념인 "한민족"을 대체하고, 전통적인 동아시아적 민족관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다문화 정책과 세대교체, 정치개혁


대한민국은 현재 저출산으로 아주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2100년경에는 3000만명으로 내려갈수 있다고 한다.삼성경제연구소는 2010년 저출산에 따른 노동력 부족을 풀려면 2050년까지 1159만명의 이민자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가 있다. 


일본과 단리 어느 정도나마 받은 독일은 그나마 최악을 피하고 인구 구조가 적당히 개선되는 것을 보면서, 사회지도층 및 언론에서는 이민 수용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기에 앞으로는 이야기가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일단 IMF에서는 장기적으로 한국 내 이민자 수가 2050년 기준 인구의 35%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연구기관들도 한국이 앞으로 통일을 하지 않는 이상 2050년대까지 적어도 700만 명 이상의 이민자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


정치적인 문제로서도 다문화정책을 강력하게 실시하고 있는 미국과 캐나다는, 인구증가율이 꾸준히 늘어가고 있으며, 이는 결국 오바마와, 트뤼도를 만들어 내고 있다. 즉 사회의 개혁 움직임과 노동자와 시민단체들의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정치적 활기를 찾을수 있다. 그러나 다문화정책에 대해서 비교적 인색했던 러시아와 영국은 푸틴과 브랙시트를 만들어내는 것만 봐도, 이민자의 증가가 세대 교체와 정치 개혁에 상당한 영향력을 준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동화와 분리의 타협, "시민 통합 정책"


기존까지의 다문화정책은 미국식처럼, 한 나라의 수많은 가치관들을 막연하게 포용하거나 하는 방식이며, 이는 사회 내에 이민자들의 독자적인 작은 사회를 만들어 내고 이민자들이 똘똘 뭉쳐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를 유지한 채 부딫치며, 수많은 분쟁을 야기하였고, 90년대 들어 동화주의 정책으로 전환되어버리는 비극적 결말을 가져왔다. 


또한 동화(assimilation)을 표방하는 이민정책 아래에서는 이민자 시험의 난이도를 올리거나, 언어시험의 강도와, 교육시간을 의무화하는 등의 무리한 정책을 추구했는데, 오히려 이는 이민을 줄여버리고 말았고, 동화주의 정책이 기존의 다문화정책을 대체하지 못한다는 결정적인 증거자료가 되었다. 동화정책이나 기존의 다문화정책은 많은 수의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되, 그들의 문화를 존중할 것인지, 아니면 배척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인데, 이 정책 아래에서 시민권 시험의 강화와 교육 커리큘럼의 의무화로 상대적으로 가난한 이민자들의 유입이 차단되고 이는 전체 이민자들의 급격한 감소로 나타났다. 


그에 대한 반성으로, 최근 국가들은 외국인 이민들의 "무료" 대학교육을 의무화함으로서, 이민자들로 하여금 그 나라의 문화랑 가치관을 인정하게 하는 형식으로 이민자들의 시민 통합을 주선하고 있다. 새터민(탈북자)들의 대한 일부 무상 대학 지원도 이러한 지출의 예이며, 다문화정책은 이러한 정책의 뒷바침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시행되어야 한다. 


 다양한 뿌리를 통한 "한국인"의 형성을 인정하자.


또한 요즘은, 어느정도의 반성이 이루어져, 국가 정체성의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전통이란 무엇인가 요즘 우리는 K-POP을 듣고 라면을 먹고, 학교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며,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는다. 이 상황에서 "한국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필연적으로 나올수밖에 없다. 


즉 다양한 뿌리, 다양한 집단과 교류하며, 한국 주류 사회에 녹아든 문화가 곧 한국의 문화라는 것이며,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는 이민자들의 문화도 한국의 문화로서 받아들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문화가 고정적인 것이 아닌, 유동적인 것이며, 수많은 문화를 모방하고 받아들여져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엔 K-Pop의 동남아 재패도 바로 그러한 결과물인 것이다. 우리가 서구 문화를 이해하고 이를 주류 사회에 편입시키고 한국인의 것으로 만들면서 오늘 우리나라는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다. 즉 다문화정책 역시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바로 하멜 표류기에서 나오는 대목이다.


조선인들은 하멜에게 벨테브레이를 가리키며 "이 자가 어느 나라 사람인 줄 아는가?"라고 물었고 하멜이 "우리 네덜란드 사람이 틀림없다"고 대답하자 조선인들은 웃으면서


"틀렸다. 이자는 조선인이다"


오늘 한국인이라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당시 "조선인"이라는 것의 인식이 "조선이라는 국가에 사는 사람" 정도였음을 보여주는 인식이라 하겠다. 이외의 문헌에서는 "요동에서는 조선인들이 살고 있다" 정도로 보았을 때에도 풍습이나, 언어로서 구분했던것 같다. 


즉 결론적으로,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동기는 경제적인 것이었으나, 다문화 정책의 뿌리는 민주적 시민권의 확립과, 인도주의적 목적에 존재하며, 통일과 새로운, 역동적인 국가정체성을 위한 대가 지불이자, 미래의 대한민국에 대한 가장 값싼 투자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지금 당장 문제가 발발한다고 해서, 이를 멈추고 페기하자는 주장은 양성평등 운동이 사회에 부담을 주니 페기하자는 주장이나 별 다를바가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