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담론/정치(Politics)

한자와 실질문맹률, 그리고 젊은 사람들.

첼린저스 2016. 8. 3. 14:32

한자 병기 논쟁에 대해서 여러 의견들이 오가는데, 그중에서 몇가지를 뽑아 반례를 들고자 한다. 


한자를 모르면 전문 용어와 고급 어휘를 배우기가 쉽지 않다?


한자를 몰라서 전문 용어를 모른다는 주장은 어찌보면 웃긴 주장이기도 하다. 물론 한자를 알면 당연히 그 뜻을 모르더라도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다. 심근경색이라는 단어도 한자로 써놓으면 대충 "심장근육이 딱딱해졌구나" 해서 그 뜻을 유추할 수도 있다. 한자 교육은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같은 영미권 국가나 알파벳 사용 국가중에서 라틴어 또는 어근 또는 어미를 배우는 것과 똑같다고 볼 수 있다.  


영어에서 굳이 예를들면 이렇다


Prescription

pre는 미리, scrib은 쓰다 또는 정하다. 결론적으로, prescribe는 "규정하다" 라는 의미가 있다. 문맥상으로 의사가 prescription을 주었다 라고 나온다면, "아 규정하는 것을 준 거구나" 식으로 대충 유추할 수 있다. 

Convert

con은 라틴어로 together(함께) , vert는 turn(돌리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결국 라틴어 또는 라틴어 어근을 배웠다면 고급 단어 습득에 도움을 줄수도 있다. 


두 단어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결국 읽기를 하고,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놀다보면 다 쉽게 하게 되는 단어들이다. 아마 이 글을 보는 사람들도, 라틴어 어근이나 어휘를 외우기 보단 아마 이런 단어들을 단어장에서 먼저 보지 않았을까? 라틴어 굳이 배우지 않아도, 어근이나 어미를 배우지 않고서도, 꾸준한 독서와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충분히 고급 영어를 읽고 쓸 수 있다. 한국어도 마찬가지이다. 전문 용어를 배우는 입장에서 한자를 배운다면 단어 습득에 아주 좋겠지만, 한자를 배우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될 이유까진 없다.


‘인문사회적 소양’을 키우기 위해 ‘한자교육 활성화’가 필요하고, ‘한자교육 활성화’를 위해 ‘교과서 한자 병기’를 하겠다는 게 교육부 논리다. 인문사회적 소양에 독서만큼 좋은 게 없지만 한자 공부도 어떻든 도움이 된다고 인정해보자. 이는 마치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운동이 가장 좋은 처방이지만 그 대신 ‘영양제 복용’을 대책으로 꼽는 것과 비슷하다. 영양제도 도움이 되기는 될 거다. 민간인이 전문 용어나 고급 어휘를 기르기 위해서는 그 어원인 한자를 배우기보단 독서를 권장하는 것이 옳다. 



한자가 독해에 도움을 준다?


한자가 독해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일정 부분 사실이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 전혀 이의가 없다. 다만 한자어는 현대에 들어와 독해에 예전만큼 엄청난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영어를 모르는 것이 전공서적과 독해에 더 지장을 주지 않을까 싶다. 심지어 한 연구결과는 한자 어휘가 한국어의 50%대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아 우리나라 단어의 70-80%가 한자라는 고정관념을 깨트였다.   


한국은 ‘의미의 정확한 전달을 위하여 교육 목적상 필요한 경우’에 제한적으로 병기를 허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백 걸음 양보해도, 그 취지에 맞게 적용하면 그만이지 왜 굳이 한자 병기를 검토하겠노라고 발표했는가? 이는 긴급 또는 보수차량만 갓길로 갈 수 있다는 제한적 규정을 핑계로 갓길 주행은 언제든 가능하다고 둘러대는 궤변과 다름없다. 특히나 병기가 필요 없는 단어마저도 무조건 병기하자는 주장은 오히려 가독성을 해칠수도 있는 중대한 문제이다.  


만약 한국에서 단어 조어법을 깨우칠 정도로 이미 한자를 알 만한 지식층이라면 고등 교육을 받았을 것이고, 이들에게는 이 블로그 포스팅처럼 한자를 병기하지 않더라도 전혀 문제없이 이 게시글의 내용을 습득할 수 있다. 수많은 신문기사들과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 책들도 마찬가지이다. 민간인들을 위한다는 한자 병기론자 또는 국한문 혼용론자의 주장은 그닥 의미가 없어 보인다. 


한자를 배우지 못해서 실질 문맹률이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관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한글 교과서로 공부한 우리 중3 학생들이 ‘독해력’ 분야 1위이다. 한글 교과서로 공부한 탓에 문장 뜻을 모르니 한자를 병기해주자는 일부 어른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잘 보여준다. 심지어 우리나라가 실질 문맹률에서 OECD에서 바닥을 깔아준다는 기사를 이용해서 한자를 안 쓰니 실질문해력이 낮아진다라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한자를 배우고 안 배우고와 실질 문맹(해)률 사이의 상관관계가 있는지 없는지는 통계학적으로 장담 못 한다. (그렇게 따지자면 황새 개체 감소가 출산율에 영향을 준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해당 실질 문해율 연구 담당자는. 윗글에서 한자를 배우고 뭐고보다는 "독서시간 부족"을 그 문제로 꼽는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중장년층이 되어도 독해력이 떨어지지 않는다.하지만 책을 읽지 않는 채로 나이가 들면 독해력이 크게 떨어진다.’ 이렇게 보면 과연 우리 중장년층이 독서를 많이 할 수 있는 환경인지 의문이 듭니다. 우리나라의 노동 시간은 OECD 최장 시간으로 알려졌습니다. 야근과 주말 근무가 많은 상태에서 일하는 50대와 60대 상당수는 독서 시간이 부족합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실질적 문해율 평균이 떨어지는 이유는 바로 그 한자로 교육받고, 세로쓰기와 한자를 병기해서 쓰는 잘난 중장년층의 하드캐리이기도 하다.



사진설명: 노년층이 우리나라 독해력 하드캐리함. 


우리나라가 1970년대부터 근 46년간 한글 전용을 고수하고 있다는걸 봐도, 이들의 주장은 논파다. 물론 통계학적으로 상관관계를 찾을수는 없지만, 한자와 세로쓰기 시절을 살던 중장년층에 비해, 한글전용 가로쓰기로 교육받고, 안정적인 교육환경에서 교육받은 젊은 세대에서 더 뛰어난 독해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대졸에서 최악의 문해율을 보였다는 건에 대해서도, 이 역시 노장년층의 문해율 하드캐리가 이유라고 본다. 심지어 이 부분에는 장년층도 한 몫 하는데, 우리 나라의 대학과 고등 교육 기관들이 제대로 평가도 못 받던 시절의 학교를 다니던 사람들이다. 


예를 들면 지금의 서울대학교와 1980년대의 서울대학은 아예 다른 대학이다. 다른 고등 교육 기관들도 마찬가지이며, 1980년대 대학을 다니던 사람들의 어린 시절은 한마디로 의무교육만 받았지, 교과서 이외의 글은 읽지도 않는, 또한 입시와 시험공부만을 중시한 열악한 교육환경이라 봐도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와 경쟁하는 서구의 중장년층 고학력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일것 같다. 그들은 안정적인 환경에서 안정적인 독서량과 좋은 멘토 아래에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도 중장년층의 독서 시간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고급 두뇌들의 문해율이 떨어지는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젊은 사람들이 한자를 못 쓴다?


이것도 사실 편견이라고 볼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문"을 못하는게 맞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어 열풍과 일본어 열풍 아래에 한자 교육보단 중국어와 일본어 교육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한자를 알지 못하고 한자를 교육하지 않는다는 설은 그만좀 믿자. 이미 필수적으로 제 2 외국어를 통해 중국어와 일본어 둘중에 하나를 배우는 사람들도 많고, 이 두 언어를 배우는 화자들은 먼저 한자와의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오히려 젊은 사람들은 이미 죽은 언어인 한문을 통해 한자를 배우기보단 살아있는 일본어와 중국어를 통해 한자를 배운다. 오늘날 한자를 더 많이 배우는 사람들을 찾으라면 어른들보다, 죽어라 제 2외국어 공부를 하고 있는 청년들이 한자를 더 잘 알지도 모른다. 


결론 짓자면, 이 논쟁에서 국한문 혼용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한글을 쓰게 됨으로서 온 국민이 그나마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지만, 국한문혼용이 된다면, 한자를 배우지 못한 사람과 배운 사람의 가독 능력이 달라지게 될 것이 너무나 자명하다. 심지어 현행법 대로,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병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국한문 병기 역시 한국어 체계상 쓸모없는 짓이며, 독해에 그닥 도움을 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젊은 사람들의 가독 능력은 이미 충분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세줄 요약이니, 난독증이니 하는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독서 환경을 늘리고, 대화를 늘리고, 토론을 중시하는 문화를 발달시키는 것이 우리 교육의 우선순위가 되어야지, 의미없는 한자를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한자를 병기하고 한자 교육을 늘리자는 주장은, 한자를 사용한다는 것에 대해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여 한국어 내에서 한자의 위치를 끌어올려, 자신의 위치와 품격을 높이려는 사람들에 의해 주장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