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담론/정치(Politics)

한자 조기교육, 일본처럼 필요가 있을까?

첼린저스 2016. 8. 3. 12:43

최근 이슈마당에서 일어난 논쟁은 한자 교육에 대해서 많은 생각 정리를 하게 해준 논쟁이었다. 한자 교육은 우리나라가 1970년대 국한문혼용체를 포기하고 한글전용으로 가면서 , 우리나라가 한자 문화권의 국가로서 남아야 하는가, 아니면 독자적인 문화권으로서의 발돋움을 시작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로 발전되어 왔다. 이 문제에 대한 최근의 이슈는 한자과목의 필수화, 초등학교 교과서의 한자 병기등이 존재한다. 


한자 조기교육, 일본처럼 필요가 있을까?


한자 조기교육을 찬성하는 주장이, 바로 일본은 독자적인 문자 체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한자를 섞어쓰며, 어렸을때부터 한자를 쓰기 때문에 일본이 지금과 같은 강성 국가로 발전했다는 주장이다. 당연히 문자 체제가 국가 발전에 영향을 준다는 근거는 없다. 영어를 쓰는 수많은 3세계 국가들이 지금도 가난에 절어 있으며, 한자를 쓰는 현대 중국어를 사용하는 중국은 아직도 부강한 국가라고는 볼 수 없다. 


일본은 왜 한자를 어렸을때부터 교육할까? 일본어를 조금만이라도 공부해보면 알 수 있다. 바로 일본어는 한자가 없으면 안되는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다. 예를들면 8월 15일을 히라가나로 쓰면 はちがつじゅうよっか, 라고 하고 삼억팔천구백이십오를 히라가나로만 쓰면

さんおくはっせんきゅうひゃくにじゅう ご가 된다. 즉 한자로 쓰지 않으면 문자가 엄청 길어지고 가독성이 떨어질 뿐더러 쓰기 힘들어지는게 일본어이다. 


한국어는 일본어처럼 한자 표기와 한글 표기의 길이가 다르지 않다. 政治는 "정치", 國語는 "국어" 같이 한자어가 2자이면 한글 표기도 2자이다. 한국어는 1자가 1 단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치와 경제같은 한자어 단어를 한글 표기로 해도, 띄어쓰기만 가미하면 충분히 가독성 좋은 문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한국어는 띄어쓰기를 하기 때문에, 문장에서 관사와 구를 구별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어는 띄어쓰기가 없기 때문에 한자를 쓰지 않으면 가독성이 엄청 떨어진다


출처: 시사일본어사 영어블로그



위의 사진처럼 일본어는 한자, 가타카나, 히라가나를 3가지의 문자체계를 쓰기 때문에 굳이 띄어쓰기를 하지 않아도 구와 구가 서로 구분이 된다. 만약 헷갈릴수 있는 경우에는 비공식적으로 띄어쓰기도 한다. 


쉽게 말하자면 이런 이야기다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만약 띄어쓰기를 안 하고 우리가 국한문 혼용을 썼다면 父親이室에入가신다 식으로 혼동을 피했을 것이다. (최대한 일본어풍을 흉내내봤다 아마 이래도 훈독해서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 라고 읽었겠지..)만약 우리가 이러한 체계로 갔다면, 일본어처럼 1000자 정도를 외우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힘들어지고, 고등 교육을 받으려면 3000자 이상의 한자 교육을 받아야지만 겨우 논문을 읽을수 있는 수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어는 어떤가? 자연스럽게 고급 어휘를 교육에서 배우고, 그것의 한자표기는 모르더라도, 그 뜻을 읽고 쓰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공문서나 국가기관의 문서, 교과서 등에 의무적으로 국한문혼용체를 쓰게 할 경우, 이미 한글 전용 교육을 받는 청소년들과 한글 전용 세태에 익숙해진 일반인들은 현재와 같은 문자 생활을 하기 위해선 원하든 원치 않든 한자를 배워야 할 것이고, 이는 한자 사교육 시장의 활성화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 또한 공문서 등이 국한문혼용체로 작성되면 우려되는 부작용, 즉 한자를 모르는 사람과 아는 사람 사이에 정보 격차가 생기는 문제를 다시 발생시킬 필요가 없다.


어릴 적의 한자 교육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일본 같은 경우라면 당연히 필요가 있겠지. 일상생활에서 언제든지 쓰는 것이고, 일본언는 위에 서술한대로 수많은 한자 표기가 공문서와 일상생활에서 쓰인다. 문자 학습을 위해 조기 교육을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어는 그렇지 않은게, 지금 상황에서 한자 조기교육을 한다면 그 실효성은 얼마나 있을까. 모바일을 예로 들자 さんおくはっせんきゅうひゃくにじゅう ご를 쓰면 三億八千九百二十五로 자동 변환되는 일본은 가독성을 위해서라도 이런 작업이 필수적이지만 한국어에서 삼억팔천구백이십오를 굳이 "가독성"을 위해 三億八千九百二十五로 변환시킬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국한문 혼용이 퇴화한 이유는 엄연히 말하자면 한국어 체제에서 일상 생활을 위해 한자 표기를 굳이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역시 혼동이 큰 글자에 대해서는 당연히 한자 표기를 괄호 안에 하고 있다. 그 정도 이상도 이하도 아닌 한자를 그렇게 어렵게 배울 필요가 있을까. 


한자 구성을 모른다 해서 우리가 낱말의 뜻을 익힐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어린아이들이 한자를 모르면서 ‘유치원’이나 ‘학교’와 같은 낱말의 뜻을 어떻게 익히겠는가? 문자를 배우기 전에 이미 실생활에서 대화와 체험,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치며 입말로 익히는 것이다. 한자어가 아닌 ‘어머니’, ‘나라’, ‘사랑’과 같은 말을 익히는 이치도 마찬가지다. 그런 까닭에 안중근 의사와 내과 의사를 혼동한다는 이들의 궤변이 현실에서는 전혀 혼란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 의사는 그 의사가 아니야~ 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안중근 의사의 "의"는 정의 할때 "의"야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니면 의롭다 할때 "의"라고 말해줄수도 있고. 


게다가 낱말의 뜻은 문자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실제 세계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사회’나 ‘회사’는 모인다는 뜻의 두 한자를 순서만 다르게 조합한 말인데, 한자 정보만으로 두 낱말의 뜻에 다다를 수 없다. ‘사회’나 ‘회사’가 어떤 한자로 이루어져 있는지는 중학교 시절에 공부해도 전혀 늦지 않다. 만일 한자를 가르치지 않아 청소년들의 의미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객관적인 연구 보고가 있다면 먼저 중학교 한문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부터 점검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