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담론/정치(Politics)

학교 폭력의 주된 원인은 담임제이다.

첼린저스 2016. 6. 12. 16:25

나는 이 글을 시작하면서, 학교 폭력에 대한 경험을 떠올린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학교 내에 서열이 상당히 엄격했던것 같다. 일진들이 있었고, 그 이후에 쎈 사람들이 주르륵 놓여있던 상황이고, 심지어 일진들은 급식 배식시간에도 새치기를 하는 등의 횡포를 부렸다. 본인은 선도부장이어서 일진들이 그닥 건드리지는 않았지만, 반에서는 언제나 약한 사람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민페를 끼치는 사람들이 있기도 마련이고 이들은 자연스럽게 집단에서 소외되고, 소위 은따나 왕따를 받는다. 


왜 우리는 1년간 같은 사람들과 같이 공부해야 하는가


사실 담임제의 역사는 일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훈장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까 한다. 즉 그 당시에는 선생님과 학교가 학생의 안전을 책임지는 시대였고, 흉흉한 세상에서 그나마 믿을만한 집단은 바로 학교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비상연락망이 바로 그 잔재이고(요즘은 돌리지 않는 것으로 안다) 그리고 담임들이 학생의 출석을 책임지고, 찾아가고, 신변의 안전을 걱정하는 것이 바로 그 예이다. 서구 교육과는 다르게 한국의 선생님은 학생의 안전을 책임저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는 듯 하다. 


즉 1년간 몇십명의 학생들을 한 우리에 가두어놓고, 안전을 책임지게 하는 제도가 바로 담임제인게 지금이 1940년대나 1970년대였다면 이것이 상당히 먹힐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2016년이다. 부모가 충분히 학생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고,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학생은(안전보호라던지) 별도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관리해도 충분히 학교가 학생들의 안전을 책임질수 있다. 



나는 내 성격을 숨기고 싶다.


우리는 담임제의 문제점을 말하기게 앞서, 학년 초, 막 반을 배정받았을 때에 광경을 생각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학년초에는 서로 눈알을 굴리며 서로를 파악하기에 바쁘며, 이때 왠만하면 서열화나 학교 폭력이 없는것을 알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서로가 서로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분위기는 5월이나 서로가 서로를 파악하는 시기가 되면, 달라지기 시작한다. 몇개월 지나다보니, 교실에 있는 학생들은 서로서로를 파악하게 되고, 집단내에는 약자가 생기고, 민페를 끼치는 사람들이 생기며, 이들은 자연스럽게 은근히 따돌림을 받거나, 힘이 약하면 아예 노골적인 학교 폭력을 일진이나 집단으로부터 당하게 된다. 왜 이런일이 일어나는가? 그 이유는 그들이 쉬는시간, 자유시간, 점심시간, 수업, 모두 같은 자리에서 같은 교실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복수담임제랑, 선택담임제를 도입하는 등의 대체제를 내놓고 있으나, 결국 같은 학생들이 같은 교실에서 생활하는건 별 다를바 없어 보인다. 교육부 입장에서야 궁여지책으로 타협책으로 만들어낸 것이겠으나, 이것이 학교 폭력을 해결하지는 않는다. 즉 자신의 성격과 약점을 숨기고 싶고, 자신이 사회생활을 하지 않을 권한을 박탈하는 것이 현 담임제이다. 결국 한 공간에서 서로 생활하다보면 자신의 약점이 그대로 들어나게 되어 있다. 스스로 아웃사이더가 될 자유조차도 없어지는 체제가 바로 담임제 아닌가. 


왜 조직생활에서 민페를 끼치는 사람이 사회에 강제로 참여해야 하는가.


몇몇은 이렇게 말할수도 있다 "왕따를 당하는 사람들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 라고. 하지만 생각해보자. 너는 그 사람이 왕따를 당할만한 민페쟁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조직생활을 하면서 알게되지 않았을까? 결국 사회생활을 영위하기에 충분한 문제가 있는 학생을 사회생활에 몰아넣어서 문제아로 만드는 일을 하는것이 현 담임제이다. 


이 경우에는 더욱더 복잡한데 이들은 사회생활이 힘든 경우가 많아, 조직이나 단체 생활에서 민페를 끼치거나 배려가 부족한 행동을 하는것이 보통이다. 이 경우에는 괴롬힘을 당한 사회 부적응자를 단체가 은근히 따돌리거나 괴롭힌 이유를 어느정도 변명이라도 할 수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례를 들어봤을때 대부분이 "왕따 당할 만 했네"라고 내심 생각할 수도 있는 경우도 많다. 


다만 반드시 물어봐야 한다. 왜 사회생활을 서투르게 하는 사람이 사회에 원하지 않는데 강제로 섞여 살아야 하는가? 결국 문제가 있는 사람을 그룹에 몰아넣어서 문제를 제조하는 나쁜제도가 바로 담임제이다. 


학교는 회사처럼 자신이 선택해서 가는 곳이 아니야.


학교는 적어도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며 고등학교 역시도 사실상 의무교육이 된지가 오래이다. 회사는 자신이 따돌림을 받으면 이직을 고려해볼수도 있지만 학교는 그러기가 쉽지가 않다. 결국 도망칠수도 없고, 대책을 쓰더라도 결국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못하는 편이다. 배정 역시

도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의 성격을 숨길 수 있고 거리를 두는 사회, 서로 약점을 파악하기가 불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즉 학교폭력의 대부분의 문제는 서로가 서로를 파악할 수 있는 사회에서 일어난다. 


물론 대한민국도 그닥 교육 재정과 교육정책을 바꾸기 싫어하는 관계로 갑자기 담임제를 하루아침에 페지하는 건 어려울 것이다. 다만 교육정책의 개선 방향을 이같이 과목을 단계별로 선택하게 하고, 대학처럼 각 과목 선생님들의 수업을 선택해서 들을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대학처럼 국어수업에 A선생님, 사회수업의 b선생님 수학수업에 c선생님으로, 각 과목반마다 참여하는 학생들이 다 다르면, 어짜피 해당학생은 해당 수업에만 마주치므로, 그리고 단체생활을 같이 하지도 않으므로, 약점을 최대한 숨길수도 있고, 서로 거리를 두는 것도 훨씬 수월할 것이며,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단체를 떠나는 선택지를 고르게 할 수도 있다. 


교육 개혁은 이와 같은 방향으로 개인의 사회 참여를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돌려놓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