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사회/인류의 역사

메소포타미아, 개방의 역사.

첼린저스 2016. 8. 19. 20:13

4대 문명중에 가장 고(古) 문명을 뽑으라고 한다면 당연히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첫번째 문명으로, 3200년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을 중심으로 많은 도시국가들이 발달하였다. 이곳은 평야에다가, 사방이 적으로 둘러쌓인 곳으로서 수많은 민족과 계통의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결국 이 문명은 현대 문명의 근간중 하나가 되었다.


현대 문명은 사실상 서구에 기반이 되어있는 문명이라 볼 수 있고, 서양사를 형성한 문명이라면, 4대 문명중에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 그 이외에도 에게 문명과 크레타 문명등이 있다. 이 중에서 메소포타미아는 여러, 바퀴,핀,반지,풀,맥주, 달력등의 중요한 발명품과 체계를 만들어낸 문명이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수메르인으로서, "수메르" 라는 뜻은 "강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 을 일컽는 말이었다. 


이는 나일 강과 달리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은 정기적으로 범람하지 않아, 물을 빼거나 저장하는 산업인 "관개"산업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강가에 사는 사람들은 더 특별한 기술과 강 범람에도 살아가는 방법을 가졌던 것이다. 


이들의 특징이 "강가에 살고 있는 것" 인 만큼, 이들의 생활에서 농사와 측량, 그리고 강이 범람했을때 주로 살아가는 방법인 "상업"과 "물물교환"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이들은 은과 밀을 화페로 쓰고, 식량을 빌리는 경우가 많았다. (주로 신전이 이렇게 식량을 빌려주는 경우가 많았다 한다.) 특히나 아카드 왕국 이전의 시대의 경우, 강의 지배권을 두고 도시 국가의 전쟁이 많았기 때문에 흉작이 드는 경우가 종종 존재하였다. 이 경우 빛을 변제해주거나 재무 탕감을 시켜 주었다고 한다. 



간단한 연대기


메소포타미아의 시대 구분은 다음과 같다


1. 수메르인이 정착함

(1).우바이드 시대--> 기원전 6500년경에 시작한 아름다운(?) 시대로 선사시대와 역사시대의 경계가 애매한 시대

(2) 우르크 시대--> 4100년부터 시작한 시대로 제정일치, 신분제등의 특징이 나타남. 

2. 아카드인들에게 정복당함 --> 사르곤 왕이 유명함. 

3. 수메르인이 다시 독립을 쟁취함

4. 구 바빌로니아 왕조에게 정복당함 --> 함무라비 법전 

5. 북방 이민족의 시대. (카시트인,히타이트,후)


문명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쓰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수메르인 이외에도 우바이드 시대는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수많은 족속들이 임시적으로 거주하거나 이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메르 인들은 자신들의 기록은 이러한 유목민들이나 이동하는 사람들과 다르게 글자로 남겼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러한 특징을 현대에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수메르인들은 제정일치 사회와 신분제 사회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큰 도시들은 강의 지배권을 가지기 위해 반목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아카드 왕국이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사르곤 왕이 이끄는 아카드 왕국은 메소포타미아를 거의 통일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대표성을 띄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이들이 수메르인보다 글을 적는데 열성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아카드 왕국이 북방 이민족들에게 이후 우르 제 3왕조에 의해 수메르인들의 민족국가가 회복되었다.(물론 통일은 하지 못했고 이후 100년간 수많은 도시국가, 아카드왕국, 그리고 우르 왕조가 경쟁하게 된다.)


그 이후에는 이 티그리스강-유프라테스강 지역에, 아모리 인들이 침입하게 된다. 이들이 세운 왕국이 바로 구 바빌로니아 왕국으로서, 바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법으로 유명한 "함무라비" 왕이 존재하던 시절이다. 중학교때 아마 이 법전에 대한 설명은 엄청 들었을테니 생략하겠다. 


바빌로니아 왕국의 특징은 



거의 대부분의 도시들을 통일하고, 바빌로니아는 수메르와 아카드를 계승했다는 것을 상당히 자랑스러워 한 듯 하다. 이는 바빌로니아의 정책도 한몫 하고 있는데, 바빌로니아인들은 수메르어와 아카드어를 포용하는 정책, 그리고 민중들의 입말을 포용하는 정책을 한 기록들이 존재한다. 물론 민중이나 일상 생활에서는 아카드어가 쓰이고, 의식이나 과학, 문학에서는 수메르어가 주로 쓰이고 있었다. 


언어와 종교 그리고 기술


종교는 비슷한 것을 믿었으나 5000년이나 되는 세월 속에서 초기 종교와 후기 종교는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신앙은 계속 바뀌었던 것으로 보인다. 뭐 유일신 종교가 아닌이상 흰두교나 그리스 다신교, 이집트 다신교같은 형태였을 것이다. 이들의 주신과 주요 신앙은 시간이 갈수록 바뀌었지만 그렇다 해서 종교의 틀이 바뀌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예를들자면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이전에는 엔릴이 주신이었지만, 함무라비 이후에는 마르둑이 최고 신으로 나타나고 있다. 


언어의 경우, 언어의 경우에는 수메르 시대를 제외하고 구 바빌로니아 시대까지 아카드어가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이들 시대에서도 종교는 거의 비슷했기 때문에 수메르어는 아카드 시대 당시에는 사어였지만 종교적인 언어로 쓰였다. 이는 아카드 시대에 발굴된 종교적 의미를 담은 수메르어 문자들이 발견된 것으로 증명이 가능하다. 또한 수메르인이 이 문자를 쓰던 시기에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상형문자를 쓰던 시기에 가까워서 600개나 되는 글자를 외워야 했기 때문에 성직자나 엘리트 계층만 문자를 쓸 수 있었다. (초기 이집트의 히에로글리프처럼 말이다) 



(상형문자에서 쐐기 문자로 넘어가는 시절의 글- 설형문자) 


수메르인은 주로 상형문자를 사용하다가 관념적인 특징은 쐐기 문자(사랑,우정같은 관념적인 것)로 표현하는 <설형문자>를 사용하게 된다. 그러다가 후기로 가면 갈수록 상형문자를 버리고 모두 쐐기 문자로 통일하게 된다. 쐐기 문자를 사용하는 이유는 이들이 이집트나 중국과 달리 파피루스나 죽간을 이용하지 않고, 언제나 불규칙하게 범람해서 생기는 "진흙"에 글씨를 써야했기 때문이다. 


찰흙에 그림그리는거 초등학교때 해본적이 있다면 알겠지만, 찰흙에 날카로운 칼로 선을 긋는다면 찰흙이 실처럼 길게 튀어나와 더럽히는건 물론이고 판이 엉망이 되기 쉽고 알아보기도 힘들어지기 때문에, 이들의 입장에서는 푹푹 찍어서 글을 쓰는게 빠르고 보기 좋았을 것이다. 그것이 발전한게 쐐기 모양같다 해서 <쐐기 문자>라고 부른다. 



일일히 그리는 것도 귀찮았던지 이제 대놓고 꾹꾹 눌러쓴다. 아마 필기구가 도장과 나뭇가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서구 문명은 세가지 문명 중 가장 페쇄적인 지역이라 독자적인 문화를 확립한 이집트 문명, 그리고 왕조가 바뀌며 수많은 사람들과 동화하고 싸우며 왕조들이 업치락뒤치락 하며 싸우며 문명을 발전시키던 메소포타미아 문명, 또 지중해를 누비며 무역으로 양 문화를 전파했던 에게, 포에니 문명등은 서구 문명의 기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수메르인과 아카드인 그리고 그 둘을 포용하였던 아모리 인, 이들이 서로 얽히고 섥히며 결국 바빌로니아라는 강력한 국가를 창설해내었고, 이집트와 실컷 싸우던 히타이트와 앗시리아등과 교류 또는 분쟁하며 성장하며 아시아 세계는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어 내었다.


특히 초승달 지역에 대한 완벽한 통제권을 틀어쥔 바빌로니아는 수메르인의 문화와 아카드인의 문화를 서로 존중했으며, 바빌로니아 치하 300여년동안 수메르인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추후 바빌로니아 왕국이 히타이트에게 함락된 와중, 북방 이민족중 카시트 인들이 북부 바빌로니아를 정복했을 때도, 마르둑을 자신의 신과 동등하게 올려놓는 등의 포용책을 보인다. (그 결과로 카시트인이 세운 바빌로니아 왕조는 300년이나 유지된다!) 


이러한 종교적,문화적 포용책등은 메소포타미아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들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정책이 지구라트와 60진법, 점성술과 측량술같은 기술의 축적으로 인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전은 더더욱 속도를 내었다 (이집트가 통일되어 막 계단 피라미드를 설계할 당시, 메소포타미아 출신 임호테프가 지구라트와 건축 양식을 보고 영감을 얻고 기술을 배껴갔다. 물론 저작권료같은건 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