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담론/종교(Religion)

사랑의 교회, "영적인 법" 드립, 그리고 교회와 세속주의.

첼린저스 2016. 7. 2. 20:52


최근에 이러한 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6/06/16/story_n_10497858.html?ncid=fcbklnkkrhpmg00000001


오 목사는 이어 "한마디로 말해서 영적인 배수진을 쳤고 출사표를 던졌다, 지금"이라며 "서울시가 뭐라 하든 누가 뭐라 하든, 세상 사회 법 위에 도덕법 있고 도덕법 위에 영적 제사법이 있다"고 말했다. 또 "100~200명이 그렇게 난리를 치고 행정소송한다는 것이, 서초구에만 우리 등록 교인이 2만 수천명인데, 영적 공공재라는 게 있다"며..(후략)



사랑의 교회가 말한 이 "영적 제사법"은 사람들을 어이가 없게 만들었지만, 모태신앙인인 나로서, 그리고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라면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기도 하다. 즉 사회가 종교에 대해서 반드시 취해야 되는 중립적인 태도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태도를 종교에 적대적인 것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만이 아니라, 동성결혼 문제 역시도 이러한 가치관의 차이가 존재한다. 



"사회의 가치판단 방법" 을 인정하지 않는 종교의 가치판단이 인정받을 수 있을까?


제목이 조금 어려운 것 같지만, 사실 간단한 원리다. 기독교와 그 인격신은 "객관적"으로는 증명할 수 없다. 과학으로도 반증할 수 없다.  하지만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영으로서 느낀다. 그래서 과학적이고, 객관적이지 않아도,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 굳이 과학적으로 증명해주지 않아도, 자신 개개인의 확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 라면교 등등이 존재한다. 사회는 가치 중립적이고,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증거이며, 객관이다. 그것에 기반하여 법과 제도가 나오는 것인데, 몇몇 종교들은 사회가 자신들에게 반드시 우호적이여야 한다고 간주한다. 서구 사회에서 이슬람 이맘들이, 우리 이슬람은 서구 사회에서 종교적인 탄압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이유이다. 이슬람은 여성들에게 히잡과, 아내들을 향한 훈육, 코란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의무교육과정의 반대등을 피력하는데, 결국 이건 세속의 가치와 부딫치기 마련이다.


동성결혼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예를 들어보자, 한국 기독교의 주류는 현재 동성연애와 동성결혼을 반대하고, 이에 대한 혐오를 들어내고 있다. 과학적 증거는 전무하다시피 하며, 주장의 주된 근거는 성경뿐이다. 그래서 성경을 근거로 그들은 동성결혼을 "반대"한다. 그러나 신의 이름에 의해 동성연애에 찬성하는 라면교라(실제에서 FSM같은 곳은 찬성할지도) 는 종교가 있다고 한다면, 기독교와 라면교의 갈등 속에 사회는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이 예에서 나오듯이 다른 신을 모시는 종교는 의견이 다를수도 있다. 다만 이 의견이 맞는지 틀린지는 신도들의 개인적 확신에 달렸다는게 문제이다. 종교이니깐.


그러니, 종교와의 충돌과 형평성을 위해, 사회는 비논리적인 신을 배제하고 "가치 중립"이라는 것을 선택했다. 증거에 기반한 "과학적 사고"를 기반으로 판단한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영적 제사법이라던지 하나님의 법을 세속에서 세속법보다 우선한다는 것은 우리나라는 종교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소리나 별 다를바가 없다는 것이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오늘 사랑의교회같은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은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다. 바로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라는 문구이다. 교회는 구원을 위한 존재이지 사회를 강제로 끌고가는 역할을 맡기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기독교 근본주의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사회가 가는 방향은 안좋은 방향일수도 있다. 


동성결혼이 합법화되고, 돈과 자본주의 앞에 사람이 죽고, 사회가 타락(웃음) 하고 있으니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주라"는 말씀을 통해, 세상이 어떻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던, 이 세상에 지쳐 낙오되고 무겁고 짐 진자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오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세상을 강제로 예수님 앞으로 끌고가는 중세식 교회가 아닌, 죄악많은 세상에서 지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계명만 지킨다면, 기독교 근본주의 교회가 이 꼴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