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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환단고기인가 (2) 하비루와 유대 동화주의

첼린저스 2016. 7. 11. 15:47


1887년, 이집트 카이로 남쪽에 존재하는 아마르나의 유적에서 400개가 넘는 토판이 발굴됩니다. 이를 아마르나 문서라고 하는데, 아마르나 문서는 가나안의 소왕국들이 이집트 파라오에게 보내는 소위 외교문서로, 당시 학자들의 호기심을 불러들이는데 충분한 물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마르나 문서에 특별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하비루가 침범하였다"느니, "하비루가 노예들과 합세하여 왕을 암살하였다"느니 하는 말이 나오고, 또 어떤 경우는 "저의 보병대와 하비루들을 데리고 나의 주인 (즉 이집트 왕)께서 명령하시는 곳으로 가겠습니다"라는 <하비루>Habiru하는 명칭이 무려 125회나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마르나 문서


하비루는 누구인가?


하비루가 우리의 시선을 끄는 이유는 바로, 현대 학계에서는 하비루가 히브리(Hebrew)의 어원으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하비루에 대한 문건은 당시 근동 인근 제국(페니키아, 앗시리아, 히타이트)에서 수없이 나타납니다. 옛 고대이집트 문건들과 문서들에 보면 하비루 집단은(경우에 따라서 하피루(Hapiru) 혹은 아피루(apiru) 라도 합니다) 주로 노동자나, 근로자, 어떤경우는 이방인들과 도적 떼 등을 말하는 경우가 있으며, 그 외에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발굴된 마리 문서를 보면 하비루는 용병들 혹은 독자적인 무장집단을 말하고 있습니다 티그리스 강변에서 발견된 누지 문서에 나타난 이들 하비루 노예들의 이름들에서는 다양한 언어적 배경을 보여주고 있죠.


이상의 것을 추론하면, 하비루는 혈연공동체도 아니고 언어공동체도 아니고 문명공동체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비루는 누구인가? 하비루는 바로 고대 근동 전역에 퍼져 있으면서 어느 안정된 사회질서에 뿌리박지 못하고 권리를 빼앗긴 변두리 계층, 즉 밑바닥 계층을 통칭하는 말이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가난 때문에 고용병이 되거나 또는 시민생활의 질서 밖에서 약탈자나 강도떼가 되어 살아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즉 구약 당시 고대 근동 지역에 있어서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했었던 경제적으로 빈궁하고, 사회적으로 힘없고, 정치적으로 억압받고 사는,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한 약자들이 바로 "하비루"였던 것입니다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

(출애굽기 12장 38절)


이는 출애굽 과정에서 증명됩니다. 먼저 12장 38절에서 보시듯이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만 데리고 탈출하지 않았고, 지도자 이름에는 이집트 이름으로 추정되는 사람과, 토착 언어로 추정되는 이름을 가진 경우도 많습니다. 모세의 경우에는 나중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갈대밭을 따서 지었다고 같다 붙이긴 했지만, 사실 이집트에서 모세라는 이름은 아주 흔한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출애굽 이후에 나오는 아론의 아들 피느하스도 이집트 이름으로 추정되기도 합니다. 


또한 출애굽 과정에서 금송아지, 불평불만들이 많았고 이것을 "하나님의 힘"과 군대를 이용해서 제압한 것 역시도 출애굽 공동체가 상당히 흔들렸고 다양한 사람들로, 중구난방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하비루는 단일민족인가?


페니키아에서 발굴된 토판 문서에서는 하비루가 군인으로 언급되는데 그 명단을 보면 대부분이 셈족 계통의 언어가 아닌 이름들을 갖고 있습니다. 즉 하비루는 본래 혈연적, 민족적 개념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이는 현재 유대교의 문화민족 개념이기도 한데요. 유대인이라는 개념은 정확시 말하자면 혈연적 개념이라기 보단, 유대교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일컽는 말입니다. 이 시절부터 히비루라는 집단, 즉 정체성을 유일신을 믿는 사람들로 정의하게 되면서, 많은 민족과 인종을 포용하는 집단으로 발전하게 되고, 같은 문화와 종교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같은 유대인으로 취급하는 전통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즉 이집트나 가나안에서 억압받고 도망 나온 다양한 하층 민중들이 팔레스틴의 중앙산악지대에 거주할 때, 사회적 하층민에 있던 '하비루(Habiru)'들이 이집트에서 노예로부터 탈출해 해방하여 나왔고, 광야와 가나안 남부의 사막지역에서 그들의 신으로 야훼를 선택한 후에 이 두 집단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대략 1,200년 경 가나안에 정착했다는 가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결국 출애굽기는 이들의 공통된 기억, 하비루가 종교개혁과 탄압에 밀려 도망쳐 나오거나,(물론 아톤과 야훼의 직접적 관계는 밝혀지진 않았습니다) 나일강 동쪽 삼각주에 거주하던 가나안 사람들이 힉소스 부역자로 밀려 이집트에 탄압받고 도망간 기억, 이러한 공통적 기억들이 바빌론 유수 시절 유대민족을 유지하기를 원했던 사상가들에게 의해 정립된 것이라고 봅니다.


후기 청동기시대(기원전 1500~1200년)와 초기 철기시대(기원전 1200~1000년)에 걸쳐 있다고 추정되는 고대 가나안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면, 팔레스틴 북쪽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향하는 산간 지대에서 고고학적 출토물이 나왔음이 확인됩니다. 고고학자들은 이 중앙 산간 지대에, 기원전 1250년 이후 갑자기 생긴, 성곽이 없는 몇백 개의 작은 마을들이 있었음을 밝혀냈습니다 


팔레스틴의 초기 청동기 시대에 중앙 산간 지대의 인구는 초기 청동기시대에는 1만 2,000명, 12세기는 5만 5,000명, 200년 후에는 7만 5,000명이나 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렇게 인구가 대폭 늘어났던 현상을 해당 지역의 작은 유목민들이 정착한 것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려우며, 결국 12세기 경에 가나안 외부로부터 대규모 이주가 이루어졌음을 시사합니다. 이들 중 일부가 이집트에서 나온 하비루들과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만들었다고 보입니다.



히브리(ibri)가 "이스라엘"로 넘어가는 과정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요나서 1장 9절)


전에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하던 히브리 사람이 사방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진영에 들어왔더니 그들이 돌이켜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이스라엘 사람들과 합하였고

(사무엘상 14장 21절)


구약에는 <히브리>Hebrew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오는데, 일반적으로 우리는 '히브리'라는 말과 '이스라엘'이라는 말을 동의어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나서 1장9절에 나타난 히브리는 이스라엘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생각됩니다. 너의 민족과 출신을 물어보는 대화에서 저렇게 대답했으니 말입니다. 


사무엘상 14장21절에 보면은 히브리와 이스라엘은 분명히 동일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본래의 발음은 <이브리>ibri인데 구약에는 이 말이 약 35번 나타나고 있죠


그런데 주목할 만한 것은 히브리라는 말이 족장시대부터 출애굽기까지 19회, 그리고 사무엘 상권에 기록된 사울과 다윗 당시에 이스라엘과 블레셋과 대결하는 이야기에서 9회나 발견됩니다. 이것은 히브리라는 말이 사용된 것은 족장시대부터 다윗 왕정시대까지 거의 국한되고 있다는 사실이며, 다윗 왕정이후에 구약에서는 히브리라는 말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즉 다시 말해 구약 성서에서 <히브리>라는 말이 사용된 것은 이스라엘이 안정된 국가를 이루기 이전의 역사에 주로 집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라는 말이 사용된 용례


그러면 구약성서에서 히브리라는 말이 사용된 용례를 살펴봄으로써 히브리와 하비루의 관계성을 파악해보죠.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창세기 14장 13절)


창세기 14장 13절에 아브라함을 "히브리 아브람" 이라고 부르고 있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 당시 아브라함은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가나안 사람들에게 자기를 소개할 때 가나안의 "나그네요, 이방인"이라고 말하고 있다.(창23:4) 이것은 하비루의 개념과 부합됩니다.

 

또한 요셉의 이야기에서 요셉의 신분은 이집트인의 눈으로 볼 때는 <하비루 종>이다. 경호대장 주인의 부인은 '당신이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코자 하였다'라고 말하죠. 여기서 또한 히브리는 고대 근동의 하비루 개념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1장에 보면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의 비돔과 람세스를 건축하는 일에 강제노동자로 투입된기도 하며, 이것은 고대 이집트의 기록에서 이집트왕 람세스 2세(B.C. 1290-1223년)때와 람세스 4세 때에 신전건설과 도시건설에 강제로 동원된 이들을 하비루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히브리와 하비루의 개념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회학적으로 볼 때, 히브리는 틀림없는 하비루를 말하고 있으며, 출애굽한 하비루는 바로 그 당시 고대 근동 전역에 있는 하비루 중의 한 집단이며, 나중에 다른 하비루와 구별하기 위해 이스라엘로 불리어집니다. 즉 출애굽한 하비루는 다른 하비루들과 달리 유일신앙이 있었다는 것입니다.